
가배울이 문화단체로서 농촌 마을에 들어가 마을 밥을 먹고 마을에서 자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소농이 옹기 종기 살고 있는 촌 마을은 한류 문화의 원석이기 때문이다. 만년을 이어온 자가채종의 전통 그대로 심고 거둔 콩으로 메주를 쑤어 메주를 만들어 숙성시켜 만든, 된장을 넣어 끓인 된장국 맛, 그 지역, 방문했을 그 때에만 먹어볼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오는 마을 식사 한끼 자체가 한식 문화의 원형 체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촌 마을은 오늘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 문화유산들의 자궁이기 때문이다. 이 살아있는 박물관이 갖고 있는 문화재들 중 오늘 주목해 보고 싶은 것은 할머니들이 추는 강강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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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는 흔히 임진왜란 때 조선 수병들이 매우 많은 것처럼 보여 왜군이 함부로 침입해 들어올 수 없게 하기 위하여 부녀자들로 하여금 남자 차림을 하고 떼지어 올라가 해남에 있는 옥매산(玉埋山) 허리를 빙빙 돌게 한 데서 유래했다고 알고들 있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고대로 내려오는 서클 댄싱(circle dancing)으로 보는 것이 맞다. 서클 댄싱은 악기와 노래가 수반되며 개방형이나 폐쇄형의 원을 이루며 추는 춤이다. 이 춤은 인간이 공동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처음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려온 가장 오래된 춤으로 추정된다. 손과 손을 잡거나 손으로 어깨를 잡능 등, 신체를 접촉하며 추는 이 춤은 공동체를 강화하고 고무시키기기 위해 의례와 같은 특별한 때에 원을 이루며 춤을 추었다. 이러한 서클 댄싱은 중동, 동서유럽 전역, 북남미 인디언 등 전 세계 곳곳의 많은 문화가 공유하고 있는 오래된 전통이다. 그 음악과 리듬, 춤의 형태는 지역마다 다양하다. 춤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친다(Watts, 2006; ‘circle dance", https://en.wikipedia.org/wiki/Circle_dance 에서 재인용).
위기피디아의 강강술래에는 수메르어에 보면 감-간-수할레라는 춤이 있었고 gam 은 굽다, 또는 돌다를 의미하고 gan 은 일어서다라는 뜻이며, suhale 는 춤이라는 뜻임을 소개하여 강강술래의 수메르 기원설을 소개한다. 최근 수메르를 이룬 사람들이 상투를 튼, 동이족이었다는 설이 있어 솔깃하지만 아쉽게도 출처가 소개되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강강술래로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은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三國誌) 동이전(東夷傳) 마한조(馬韓條)에 보인다. 거기에는 “…5월에 씨를 다 뿌리고, 귀신을 제(祭)한다. 떼를 지어 한데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신다. 밤 낮 쉬지를 않고, 수십 명이 함께 춤을 추는데 다 같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가락에 맞추어 손발을 맞추며 몸을 낮췄다 높였다 하면서 땅을 밟는다. 이와 같이 탁무(鐸舞)와 같은 춤을 10월 농사를 끝낸 후에 다시 춘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한의 이 춤이 강강술래라면 적어도 3세기나 그 이전부터 강강술래가 한반도에서 추어지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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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클댄스
한편, 한 지역에 함께 거주하는 주민들이 추었을 서클 댄스는, 오늘날에는 일부 지방 외에는 많은 경우, 이 지역 공동체 기반은 사라진 채 동우회나 보존회 형태로 계승되고 있다. 서클댄스가 지역 기반 없이도 동우회 형태로 이 춤이 유지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서클 댄스는 대동(大同)놀이적 성격을 가지며 춤이 단순해 특별히 오랜 기간 연마하지 않아도 쉽게 함께 출 수 있다. 둘째로 춤이 평화로와 명상 춤의 성격을 지니거나 강강술래처럼 추었을 때 ‘강력한 하나됨’의 체험을 준다. 서클댄스가 보존회 형태로 전승되는 경우는 그것이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경우 해당된다. 강강술래의 예를 들면, 그것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이며, 2009년 9월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해남, 강진, 진도 등 지역에서 현재 70~80대 노인들은 어릴 때 대보름, 추석에는 으레 마을 부녀자들이 학교 운동장 같은 데 모여 강강술래를 추었다. 그러나 유네스코 등재된 이후에는 보존회 단원만 강강술래를 추는 것처럼 되버렸다. 여기에는 이촌으로 마을의 인구가 격감하게 된 것도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보인다. 예를 들면 강진군 성전면에는 2009년 9개 마을의 여자들이 모여 ‘녹향월촌강강술래단’을 결성하였는데, 이는 9개 마을 여자들이 합쳐야 겨우 20~30여명 한 팀을 구성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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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자신의 존재의 핵, 곧 마음 또는 영성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강강술래나 사물놀이와 같은 전통적인 공동체 예술, 나는 이를 살림예술로 부르는데, 이런 춤들은 춤을 추는 성원들로 하여금 공동체 내의 상처나 갈등을 뛰어넘어 강하게 전일적인 하나 됨을 체험하게 한다. ‘신명’(神明)나게‘ 놀아보는 이 하나 됨의 체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는 모두 하나가 되는 절정의 춤판에 몸을 맡겨보지 않고는 이해되기 어렵다. 아무리 흥이 나도 무대 객석에서 듣거나 보는 것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 현대의 고급예술이나 대중예술과 달리 이렇게 함께 참여해서 맛보는 신명이 예술 본연의 모습이다. 이러한 예술을 우리는 주변에서 좀 더 쉽게, 자주 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예술 지형이 다시 짜여진다면, 그 만큼 우리 삶의 평안함,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내가 강력한 강강술래, 살림예술의 지지자가 된 데는 두 개의 강한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2006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렸던 국제 학술 포럼 ‘세계생명문화포럼_경기2006- 생명사상과 전 지구적 살림운동’(Life-Culture Forum_Gyeonggi 2006)에서의 경험이다. 이 포럼은 국내외 생태주의 학자, 운동가,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뜻 깊은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제 포럼에 임하는 일부 국내 생태주의자들의 태도는 어설프다 못해 대회를 낙제점으로 만들만큼 소아적이었다. 내 기억으로 종합토론 시간에 한국인 발표자 몇 명과 아마도 사회자까지도 전지구적 살림운동, 신문명을 열어갈 열쇠가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 있다는 논조의 토론을 하였다.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온 지성들에게 호소력 있는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주최측이 소아적인 국수주의 느낌만 잔뜩 불어넣은 이 토론으로 대회장의 공기는 극도로 불편하게 되었다. 좀처럼 모이기 힘든 전세계 생태주의 학자, 예술가, 운동가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황망하게 끝이나나 싶어 민망하기 그지 없었다. 그 누구도 깔끔하게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잔치가 되어야 할 폐막식이 민망스러운 자리가 되고 그런 폐막식에 뒤이어 뒷풀이가 이어졌다. 한 여성의 광대놀이에 이어 강강술래가 이어졌다. 한 마디로 강강술래는 모든 불편함을 녹여냈고, 참여자 모두를 띠끌 하나 없는 ‘하나’로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의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늦은 강강술래’를 하다 ‘잦은 강강술래’로 숨가쁘게 이어가다, 지칠 때쯤 ‘남생아 놀아라’를 부르다가 광대 설소리꾼이 <고사리 대사리 껑짜 나무 대사리 껑짜>라는 ‘고사리 꺽자’의 순서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다음에는 ‘청어(鯖魚) 엮자’, ‘청어(鯖魚) 풀기’, ‘덥석 몰이’, ‘덥석풀이’의 순으로 강강술래의 거의 전 과정을 다 소화하니, 언어의 벽, 마음의 벽은 다 허물어졌다. 우리의 심신을 홀딱 뺏은 강강술래 마무리 끝에 외국 참여자들은 ‘원더풀, 원더풀’을 반복하였고 그들의 얼굴은 더날나위 없이 놀라운 것을 경험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마터면 늪에 빠질 신세였던 3박 4일 진행된 ‘생명사상과 전지구적 살림운동’을 늪에서 구해, 가까스로 국제 포럼으로 면피는 하게 해준 1등 공신은 그 어느 논문 발표도 아니고 단연코 ‘강강술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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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다시 한 번 강강술래에 푹 빠져 볼 기회가 왔다. 2012년에 7월에 ‘가배울’은 ’초록교육연대‘와 함께 초등학생 환경 캠프를 진행하였다. 프로그램 중 하나로 27일 밤에 학생들에게 강강수월래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넣었다. 춤꾼 할머니들 중에는 마을 체험관에서 캠프를 온 학생들에게 밥을 해주시는 할머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할머니들이 하얀 저고리 푸른 치마의 한복으로 갈아입고 강강술래를 먼저 시연하였다. 강강술래가 어려운 춤이 아니고 흥이 나면 절로 따라 하게 되는 춤이니 시연을 본 학생들은 바로 함께 춤을 출 수 있었다. “잘 못춰, 시늉만 낼뿐이지.”라고 겸손하게 손사래치던 할머니들의 춤 솜씨와 국악 선생님과 함께 하는 두 명의 선소리꾼 할머니들의 소리는 우리 모두를 춤에 흠뻑 빠져들게 할 만큼 훌륭했다(김정희, 2013: 105). ’기와밟기‘에서 어른들의 등을 타고 이끝에서 저끝으로 걸어간 학생에겐 이 강강술래는 평생 잊지 못할 춤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강강술래가 연출하는 대동(大同)의 카타르시스는 일상 삶의 평화가 늘 위태 위태한 생존의 힘겨운 분투에 닿아 있었다. 그 위태 위태함은 언제 범람할지 모르는 강과 같이 잠재적 위협일 수도 있다. 빈한하기 짝이 없는 군력으로 코 앞의 왜적을 지켜내기 위해 남장을 하고 산 허리를 빙빙 돌아 왜적을 스스로 물러나게 한 후 ‘휴’ 하고 크게 잠시 내쉬는 안도의 한숨일 수도 있다. ‘이순신 장군’만 안 붙이고 강강술래를 추면 해방이 될 거라는 믿음을 주는 압제 속에서 해방을 부르는 춤이었다. 각주) 위태 위태한 고난의 하루를 잠시 내려놓고 그져 오로지 흥에 겨워 한 판 추어보는 춤이고 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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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가 유네스코에 등재되고 나서 지역마다 보존회나 동아리들이 생겨났다. 본래 강강술래는 춤을 이끄는 자가 그때 그때 즉석에서 선창으로 노랫말을 만들어 내는 데 묘미가 있다. 이 선창자는 어릴 때부터 혹은 시집와서 줄곧 강강술래를 참여해온 소리와 춤의 재능을 겸비한 이로서 누구보다도 그 지역의 장소성을 즉각적인 노랫말로 풀어낼 줄 아는 이이다. 그러나 보존회나 동아리 형태에서 이렇게 늘 새롭게 창조되는 장소성을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누구나 추던 춤인데 보존회 회원이라야 추는 춤이라는 잘못된 경향성마져 생기고 있다. 내가 달마지마을서 본 강강술래가 더할나위 없이 좋아 하는 것은 그것이 보존회원들의 춤이 아니라 한 면 9개 마을 여성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추는 춤이라는 데 있다. 다리가 아파 폴짝 폴짝 뛰어주어야 할 때 뛰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연출하지만, 그래도 아직 60~70세 여성 노인들은 흥에 겨워 마을 축제나 지역 행사에서 춤을 춘다.
가배울이 토종 종자 농산물 공동구매, 꾸러미를 하면서 꾸는 꿈은 마을이 공구와 꾸러미가 잘 돼서 할머니들 자식들이 노년에 돌아와 살고 싶은 마을이 되는 거, 젊은이들이 들어오는 귀촌 마을이 되는 거다. 그래야 이들이 강강술래를 추는 마을 주민이 될 것이고 그래야 생활 속의 살림예술, 강강술래는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이리 나는 강강술래 춤의 지속에 집착을 하는 걸까? 앞에서 밝혔듯이 강강술래 춤의 그 강한 에너지의 장에 몸을 담아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랜 동안 삶의 고단한 역경과 우여곡절 속에서도, 지속해온 그 춤이 우리의 뿌리 문화이기 때문이다. 뿌리 문화 그것은 단순한 삶의 양식으로서의 문화를 넘어서 우리 내면의 얼이고 마음이다. 자신의 내면의 얼과 마음에 닿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소외라고 한다. 소외는 우리 자신과 삶의 황폐함 외에 다름이 아니다.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영광 ‘언니네 텃밭’ 꾸러미를 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여기는 젊은 여성들이 좀 더 있었다. 회원들이 강강술래도 춘다고 했다. ‘언니네 텃발’도 한 농가가 3개의 토종 종자는 심는 운동을 하고 있다 한다. 토종 종자 자가채종 농사와 강강술래는 함께 하는 운명인가보다.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에만 있지 않다. 여기, 지금 우리 사회의 변방 목숨 줄이 한 20~30년 남은 자가채종 농사를 지으며 강강술래를 추는 할머니들이 있다. 이 분들은 자가채종 농사 문화와 생활 춤으로서의 강강술래의 종결자가 될까? 아니면 생존이 위태 위태한 이것들을 우리 세대에게 고이 넘겨주는 ‘오래된 미래’를 여는 여신이 되실까? 그 답은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
<참고문헌>
- 김정희(2013), 『남도 여성과 살림예술-강진, 해남의 지역예술과 여성』, 서울: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 Watts, June(2006), Circle Dancing - Celebrating the Sacred in Dance, Green Magic Publishing, ISBN 0-9547230-8-2.
- 강강술래, https://ko.wikipedia.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