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편] 여성기자 인턴십 연수기

2012.08.06


[해외 연수기] 제 11편: 미국 연수 1년을 돌아보며
YTN 보도국 김희준 차장대우


17년 동안의 기자 생활을 떠나 미국에서 보낸 1년은 나를 새롭고 넓은 세상에 눈 뜨게 했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의 두 학기는 미국 대학 캠퍼스의 학문적 진지함을 맛보게 했고 맨해튼 곳곳은 문화적 영감을 선사했다. 뉴저지에서의 생활을 통해서는 미국인의 일상과 미국이란 나라를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틈틈이 떠난 여행 또한 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미국 연수 동안 얻은 것을 정리해보려 한다.

1. 컬럼비아 대학 연수

나는 지난 1년간 컬럼비아대학교 웨더헤드 동아시아 연구소의 방문 연구원 (Professional fellow) 자격으로 지냈다. 세계 정세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반 분야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웨더헤드 연구소는 학기 내내 저명 학자들을 초대해 강의와 세미나를 잇따라 마련했다. 이 자리를 통해 아시아 각국에서 온 방문 연구원들은 물론 컬럼비아대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한반도 정세 전망과 북한 방문 보고, 중국의 경제 5개년 계획에 대한 비판적 분석, 일본의 큐티 문화에 대한 고찰 등에 대한 토론은 더욱 흥미로웠다.

저널리즘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 강의도 청강했다. 저널리스트를 위한 ‘소셜 미디어 기술’ 과정은 뉴욕에서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들과 함께 수강했는데 서로 트위터로 교류하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비즈니스 저널리즘도 청강했고 엘리후 카츠 같은 저명 학자가 연사로 나오는 박사과정 세미나에도 종종 참석했다.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학생과 교수 사이에 끊임없이 질문이 오가고 그 과정을 통해 답을 도출해보는 학문적인 진지함에 큰 부러움을 느꼈다.

미국 동부 명문대학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컬럼비아대의 명성에 걸맞게 세계 석학들의 특강도 종종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노암 촘스키, 제프리 삭스의 강의가 가장 인상 깊었다.

연구소 생활을 통해 마이런 코헨 소장님과 북한 문제 전문가 찰스 암스트롱 교수, 한국 문학에 조애가 깊은 테오도르 휴즈 교수, 중국 정치 경제학 통인 류 시아오보 교수 등과 인연을 맺었고 일본 언론과 정부기관에서 온 연구원들과 교류한 것도 큰 소득이었다.

낭만적인 컬럼비아 대학 교정 연구소 수료식에서 코헨 소장과


2. 내가 사랑한 뉴욕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맨해튼 정복에 나섰다. 로어 맨해튼부터 할렘까지 맨해튼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며 걷고 또 걸었다. 세계 여성들의 로망이라는 뉴욕에 일주일만 있어도 행복해진다는데 1년 동안 틈틈이 찾아나선 뉴욕이 주는 충만감이야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미술, 음악, 뮤지컬, 음식… 어느하나 영감을 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것이 뉴욕의 공연이었다. 게다가 학생증 덕분에 1-2백 불을 호가하는 뮤지컬과 음악회를 대부분 단 2-30불에 즐길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었다 . 오페라‘라 트라비아타’드레스 리허설은 컬럼비아대 학생에게 무료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뮤지컬‘북 오브 몰몬’팬 데이(fan day) 공연에 초청된 것도 잊을 수 없다. 몇 달치 표가 매진돼 암시장에서는 표 값이 400불을 호가하는 최고 흥행작인데 30불짜리 추첨 티켓 (로터리 티켓)에 여러 번 응모했다 떨어진 데 대한 보상이었다.

뮤지컬 공연 뒤 출연 배우들의 백 스테이지 행사를 통해 신시아 닉슨, 저스틴 롱 등 헐리웃 유명 배우들을 직접 만난 것은 뉴욕이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고 나오는 당대 최고의 앵커 바바라 월터즈를 만나 함께 찍은 사진도 기념으로 남았다.

매년 여름 석달 동안 센트럴 파크의 밤을 수놓는‘셰익스피어’공연을 본 뒤 버켓리스트의 한 줄을 또 지울 수 있었다. 공연 당일 오후 1시부터 나눠 주는 무료 표를 얻으려는 사람들로 새벽부터 공연장 앞이 장사진인데 나는 운 좋게도 바로 표를 손에 쥐었다. 저녁 8시, 센트럴 파크의 새소리, 나무 내음, 바람의 촉감과 함께 시작한 셰익스피어 ‘As you like it’ 공연은 이내 석양에 물들더니 어둠 속 달빛 아래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낭만적인 여름 밤 풍경 속에 막을 내렸다.

메트로폴리탄과 현대미술관(MOMA) 등 대형 뮤지엄 외에 클림트를 비롯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컬렉션으로 유명한 노이에 갤러리, 구텐베르 성경과 중세 성경 필사본 등을 갖추고 중세의 도서관 분위기를 자아내는 모건 라이브러리,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기차를 타고 허드슨 강변을 따라 찾아 간 디아비콘 갤러리 등 유명 컬렉션과 건물 자체가 예술인 뮤지엄들은 갈 때 마다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어주었다.

뉴욕 생활의 즐거움 중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엔 1달러라도 아끼려 하다 보니 20%의 팁과 세금이 무서워(?) 레스토랑 찾아가는 것도 주저주저했다. 하지만 연수 생활이 끝나갈 무렵 세계 최고의 쉐프들이 선보이는 뉴욕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다니엘 블루드, 토마스 켈러 등 유명 쉐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하나 둘 섭렵하기 시작했다. 연수생 신분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예술의 경지에 오른 요리와 섬세한 서비스에는 그만한 투자의 가치가 있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나가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이벤트와 볼거리로 넘치는 뉴욕 맨해튼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만난 앵커 바바라 월터스 센트럴 파크 ‘셰익스피어’ 공연장

3. 한국 홍보 과제는

1년 동안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작은 타운에 살면서 뉴욕의 번화한 삶 한편으로 차분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미국인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두 아들이 공립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재학해 미국 학교 생활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미국 학교의 특징은 무엇보다 교사와 학부모가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학교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고 그 밑바탕에 기부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PTA(PARENT TEACHER ASSOCIATION) 학부모 교사회가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학교에 필요한 행사와 예산 등을 논의한다. PTA 가입 비용은 10~15불 정도인데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가 가입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학생들을 위한 할로윈 파티를 앞두고 있다면 PTA에서 우선 논의가 이뤄진다. 파티에 쓰일 음식과 놀이기구 등은 학부모들의 기부로 마련되고, 행사 진행도 학부모들의 자원 봉사로 이뤄진다. 파티 입장료와 식음료 판매금액은 고스란히 학교 기금으로 적립된다.

할로윈 파티 외에도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노는 FUN FRIDAY, POOL PARTY, 교사 대 학생 농구대회, 학부모를 위한 카지노 나잇 등 수많은 행사들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이런 일련의 행사를 통해 매학기 적어도 2-3천 만원의 학교 기금이 적립된다고 한다. 일부 임원 학생 학부모의 지원으로 학교 행사가 진행되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런 문화이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학교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매주 수요일 한국 학부모회에서 전담한 런치 아이스크림 데이 봉사였다. 수요일 점심마다 아이들에게 후식으로 1달러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일이었다. 아이스크림 데이를 통해 매주 1-200달러의 수익금을 마련해 학교에 기부했다.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시간대별로 차례로 런치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왔는데 금발머리 꼬마들이 대여섯 가지 아이스크림을 놓고 뭘 먹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특히 고사리 손으로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열어달라고 부탁하는 유치원 생들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미국 교과 과정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나 매일 시간표가 같았다.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음악, 체육이 주요 과목이다. 매일의 숙제와 수시로 보는 퀴즈, 프로젝트 가 모두 성적에 반영된다. 벼락치기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암기 위주가 아닌 체험형 교육은 학생들의 흥미를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미국 이민사를 배우는 경우, 우선 사회 시간에 아티클을 읽고 공부했다. 그리고는 뉴욕 엘리스섬 이민 박물관에 견학을 다녀왔다. 그 이후 학생들 각자가 이민자, 이민 심사관 등의 역할을 맡아 연극을 하면서 이민자들의 유입과 정착 과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그야말로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수업인 것이다.

과학 수업 중에서도 두 달 짜리 프로젝트가 아주 인상 깊었다. 학생 두 세 명이 한 조가 돼 과학의 원리가 가미된 장난감을 정한 뒤 개념도를 만들고 재료를 구하고 만들어 보며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두달 동안 꽤 근사한 놀이기구를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사이언스 페어’라는 행사에서 학부모와 다른 학년 학생들에게 선보이고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내 둘째 아들은 일본인 친구와 클립을 자석 표적에 맞춰 점수를 따는 장난감을 만들었는데 사이언스 페어 행사에서 인기가 많았다며 무척 좋아했다. 한국에서는 매년 4월 과학의 달이면 대부분의 학교가 과학 상상화 그리기, 과학 독후감 쓰기, 로봇 조립대회 등 천편 일률적인 행사로 학생들의 과학적인 창의력을 고무시키는 것과 거리가 멀었던 것과는 참으로 다른 풍경이었다.

노래나 악기를 못해도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봄과 겨울 공연에 참가할 수 있었다. 클라리넷을 하는 첫 아들은 중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악기는 싫어하지만 노래에는 관심이 있는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합창단이 돼 공연을 했는데 연습 과정을 즐기고 자신들의 결과물에 자부심을 가지는 모습에 부모로서도 뿌듯했다.

미국 학교 생활에서 타운 스포츠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타운 대표 축구팀 활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매 주말 각 타운에서 번갈아 열리는 축구 경기에 참가하느라 뉴욕과 뉴저지 곳곳 경기장을 돌아다녔는데 아버지 어머니들이 항상 함께 나와 아들의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여러 백인 부모들을 사귈 수 있었고 연말 파티에 초대되기도 했다. 유치원 때부터 풋볼, 야구, 농구, 축구 등 다양한 타운 스포츠에 참가하고 덕분에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을 기르게 되는 미국 아이들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학원을 순례하고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운동보다는 게임에 빠져 사는 한국 청소년들의 현실은 미국에서 살아보니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정책적 지원과 변화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타운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영어 토론 수업에 참여한 일도 의미 깊었다. 영어 교육학 박사이자 교수는 제럴드 굴드의 수업은 참으로 훌륭했다. 기본적인 발음과 문법부터 바로 잡아 주는 것은 물론 미국 문화, 대통령 선거, 게이 결혼, 한반도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매주 갖고 나와 토론을 이끌어 갔다. 굴드 교수는 전형적인 미국 보수층이지만 따뜻하고 한국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진 분이었다. 한국에서 온 여기자가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에 대해서도 ‘interesting’을 연발하며 흥미로워했다. 마지막 수업 날 굴드 교수에게 한국에서 준비해온 전통문양의 보자기 와인 커버에 싼 와인을 선물했는데 너무 아름답다며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지금도 이 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는데 모쪼록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간직하셨기를 바라는 바이다.

뉴저지 Bryan School의 점심 시간 Bryan School의 교사 대 학생 농구대회

크레스킬 타운 축구팀 2012 봄 시즌 마지막 경기 기념 매 주말 자녀의 축구팀 경기를 응원하는 미국의 부모들

매주 영어토론수업 자원봉사를 하는 굴드 교수와

4. 여행, 드넓은 세상을 보다

언론인에게 미국 연수는 평생 한 번 가질 수 있는 1년이란 긴 충전의 기간이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서는 같은 외국 생활이지만 “연수 1년을 특파원 3년과 안 바꾼다.”란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 만큼 하루 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했는데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여행할 기회가 많았다는 것이다.

학교 방학과 추수감사절 연휴, 크리스마스 연휴 등 시간만 주어지면 가능한 떠나려 노력했다. 여행은 일상에서 떠나 내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가족과 추억을 공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온 가족이 1년에 1주일 시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미국 생활 동안은 오로지 비용 말고는(!) 큰 제약이 없었다.

워싱턴,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가까운 미 동부 지역은 하루 이틀동안 가볍게 다녀왔다. CNN과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조지아주 애틀랜타, 오대호를 끼고 있는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미국인들의 꿈이라는 플로리다주의 올랜도 테마파크는 사흘 이상 제법 긴 시간을 들여 여행했다. 미국은 각 주마다 도시마다 색깔이 달라 광할한 땅을 실감케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의 하나는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스톤 기행이었다. 뉴욕에서 몰몬교의 성지이자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까지 항공편으로 날아간 뒤 차를 빌려 옐로스톤까지 400여 마일의 길을 달려갔다. 유타주에서 아이다호, 와이오밍 주를 거치는 동안 대부분의 풍경은 끝없는 펼쳐진 광활한 평원이었는데 그 길이 지루하다기 보다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낭만적이기만 했다. 옐로스톤 내에 숙소를 잡아 나흘을 보내며‘국립공원 종합 선물세트’라는 옐로스톤 곳곳을 섭렵했다. 만여 개의 간헐천 중에서도 규칙적으로 50미터까지 분출되는 올드 페이스풀은 살아있는 지구를 느끼게 했고 옐로스톤의 그랜드 캐년 협곡은 장엄했다. 옐로스톤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바이슨, 반달곰 등 곳곳에서 출몰하는 동물들을 보며 자연에 흠뻑 충만된 시간이었다. 자동차를 몰고 LA와 라스베이거스, 그랜드 캐년 등을 거쳐간 미국 서부 여행도 좋은 추억이 됐다.

지난 4월에는 브라질, 페루, 아르헨티나 남미 3개국도 여행했다. 비용적으로 큰 부담이었지만 한국에서 가려면 몇 배나 멀고 비싼 여행이라 미국 있을 때 남미를 다녀오자 용단을 내렸다. 브라질에서는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한 경제대국과 개발 잠재력이 무한한 시장을 목격했다. 리우데자네이로의 코파 카바나 해변과 자연도 좋았지만 말이다. 페루에서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잉카 문명의 고대도시 마추픽추를 내려다 보며 경탄해 마지 않았다. 전날 고산지대 적응 차 묵은 해발 4,300미터 쿠스코에서 겪은 고산증의 고통은 한 순간에 날아가버렸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는 그룹 JYJ 공연 이후 K-POP 열풍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한국인이라는 사실만 알고도 박수 치며 환호를 보낼 정도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과수 폭포의 절경보다 탱고의 발상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보카 지구의 낭만적인 풍경에 더욱 설레이는 시간을 보냈다.

잉카문명 고대도시 마추픽추 정상에서 옐로스톤 도로를 점령한 바이슨 무리

난생 처음 미국에서 생활하며 대학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맨해튼을 누비던 1년 동안 한국에서의 나의 모습을 돌아 볼 수 있었다. 늘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일에 열정을 쏟아왔다 자부했지만 그건 내 영역에만 갇혀 살았던 우물 안의 개구리와 다름 없었다. 기사를 쓸 때도 종합적으로 생각할 여유 없이 내 분야에만 편협하게 매몰된 던 것 같다. 그렇게 20년 가까이를 보내는 동안 세계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는 좀 더 확장된 시각을 갖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정확하고 공정한 기사로써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기부와 봉사를 통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만들겠다는 결심이다. 물론 서울에 돌아가면 이런 결심은 어느덧 흐려지고 예의 일상을 반복할게 될런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1년 동안 미국에서 보고 체험하고 느낀 것들이 앞으로의 내 삶에 긍정적인 자양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 모두가 가능하도록 큰 지원을 해 주신 MCM 성주재단과 여기자협회에 마지막 연수기를 빌어 다시 한 번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