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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소식

'여자라면 피아노’ 권하는 시대에 색소폰 부는 여자 2018-11-02



7세 때 첫 자작곡을 썼고, 12세에 첫 앨범을 발표했고, 16세에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기념 공연을 펼쳤다. 한국계 미국인이며 ‘재즈 신동’으로 미국에서 이름을 떨친 알토 색소폰 연주자, 그레이스 켈리(27)는 요즘 세계 무대를 누비는 중이다. 여성 솔로 뮤지션이 드문 재즈 음악계에서, 켈리는 다른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음악을 통해 자유·평등·다양성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그는 젠더나 인종을 떠나 누구나 자신만의 꿈과 열정을 좇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켈리의 한국 이름은 정혜영. 1992년 미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부모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웠다. 정형화된 레슨과 악보가 지겨워 7세 때 첫 자작곡 ‘On My Way Home’을 썼다. 10세 때부터 색소폰을 배웠고, 14세 때 미국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19세 때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이후로 보컬리스트, 작곡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최근 발매한 ‘GO TiME: Brooklyn 2’를 포함해 정규 앨범만 12장을 냈다. 2016년 보스톤 뮤직 어워드가 선정하는 올해의 재즈 아티스트, 2017년 NYC Jazz Fan Decision의 올해의 알토 색소폰 연주자 등으로 선정됐다. 일렉트로 재즈 팝(electro-jazz-pop)으로 분류되는 그의 음악은 경쾌하며 에너지가 넘친다.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는 “켈리에겐 무대에 오른 순간부터 관중을 열광케 하는 카리스마를 지녔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4일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참석차 자신의 밴드 ‘그레이스 켈리 브루클린 밴드’를 이끌고 한국에 왔다. 2008년 청소년 자살예방 자선콘서트를 위해 처음 방한한 이후 10년 만이다. 그가 자라섬에서 사실상 공식 아시아 데뷔 공연을 치른 다음날인 15일, 서울 서대문 부근에서 그를 만났다. 알록달록 화려한 점프수트에 알토 색소폰을 든 그는 공연의 피로는커녕 매우 활기찬 인상이었다. 

 


여성 솔로 뮤지션이 드문 재즈 음악계에서, 켈리는 다른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 한국에 돌아온 걸 축하해요! 무대에 서 보니 어땠어요?

“세상에, 록 콘서트 같았어요! 마지막엔 관객들과 함께 대규모 댄스파티를 벌였죠. 관중이 이렇게나 호응하는 모습은 7년 만에 본다는 스태프도 있었어요. 사인회에도 많은 여성 팬들이 와 주셨어요. 정말 즐겁고 행복했어요.”

- ‘여성 재즈 뮤지션’ 하면 대부분 피아니스트나 보컬리스트를 떠올리게 돼요. 여성 색소폰 연주자는 보기 드물죠. 어떻게 색소폰을 연주하게 되셨어요?

“부모님 덕에 집에서 재즈, 팝, 록 등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자랐는데 스탠 게츠(Stan Getz)의 음악을 들으며 색소폰의 음색에 반했어요. 부모님을 졸라 본격적으로 연주하기 시작한 뒤론 완전히 빠져들었죠. 사실 많은 여성들이 클라리넷, 플루트, 피아노 등을 선택해요. 본인의 선택일 수도 있지만, 주변 친구들과 교사, 어른, 미디어가 모두 ‘여자라면 피아노지’ ‘색소폰은 남자가 부는 거야’라고 말하는데 다른 선택을 하긴 쉽지 않죠. 하지만 악기엔 젠더가 없어요. 누구나 원하는 악기를, 음악을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레이스 켈리는 2016년 미국의 여성인권단체 ‘She’s the First’와 손잡고 프로젝트 주제곡 ‘She’s the First Anthem’을 선보였다.
나이 스물일곱에 밴드 리더가 된 켈리는 전 세계를 돌며 한 해에만 70~80회씩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 TED강연, 여성 리더십 포럼 등에도 초대돼 수차례 강연을 했다. “제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고 즐거움을 주는 게 꿈”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러나 켈리 같은 경륜의 뮤지션에게도 ‘여성’이라서 겪는 차별과 편견은 현실이다. 여성 뮤지션의 수 자체는 적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꽉 잡고 있는’ 음악계에서 ‘여성 뮤지션’으로 분류돼 폄하당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켈리는 “이제 내가 다른 여성 뮤지션들의 롤 모델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여성인권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도 힘써온 이유다. 2016년 아프리카 소녀들이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미국의 여성인권단체 ‘She’s the First’와 손잡고 프로젝트 주제곡을 만들었다. 여성이라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한 소녀들이 학교에 가면서 리더로 성장하고 더 멋진 변화를 만들기를 응원하는 노래다. 글로벌 패션지 엘르와 손잡고 또 다른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수많은 멋진 여성들과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터져나온다. 앞으로도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더 재미있고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해나가고 싶어요.”

- 2018년에도 ‘여성’ 뮤지션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합니다. ‘아시아계 여성’ 뮤지션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선입견을 겪진 않으셨나요?

“인종차별적인 경험도 했지만, 성차별을 더 많이 겪었어요. 제 전략은 그럴수록 제 기술을 더욱더 열심히 갈고 닦는 거였어요. 그래야 사람들에게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요. 어차피 우리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죠. 화려한 파티에 참석해서 남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하기보다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뭔지, 나만의 길이 뭔지 찾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요. 여성은 늘 남성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해야만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죠. 그럴 필요 없어야 하는데도요. 사실 재즈음악계뿐 아니라 음악계 전체가 남성 중심적이에요. 2018년쯤 됐으면 누구에게나 평등한 무대가 돼야 하는데 말이죠. 이젠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우리에겐 여성 임파워먼트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고 변화를 꾀할 책무가 있어요.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사실 뮤지션으로 성장하는 동안 롤 모델을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는 롤 모델 여부가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 후배들이 절 보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라고 느끼길 바라요. 여성에게 기회를 주고, 남성이 여성을 동등한 뮤지션으로 대할 수 있도록 만들 책임도 있죠. 저희 밴드 멤버들의 성비도 남녀 5:5예요. 

다행히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선 여성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히 이런 문제들을 논의하고 서로 지지하고 있어요. 여성을 지지하는 멋진 남성들도 늘었고요. 우리가 편을 가르고 싸우기보다 힘을 합해 지금의 상황을 바로 보고 함께 변화를 위해 노력할 때라고 생각해요. 여성이 여성을 지지하는 거대한 움직임이 필요해요. 남성들도 여성 CEO, 여성들이 활약하는 음악 페스티벌 등을 지지할 필요가 있어요. 여성들의 회복력(resilience)과 놀라운 힘을 얕보면 안 돼요. 그런 세상이 온다면 굳이 ‘여성 대통령’을 외칠 필요도 없겠죠.”

- 음악을 하려는 여성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려요.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길 바라요.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내 방식대로 고민해 보세요. 조금 남달라도, 조금 이상해도 괜찮아요. 사람들이 뭐라고 한대도 내 방식이 문화적 관습을 바꾸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자신을 믿고 스스로 리더가 되세요. 누구에게나 삶의 소명이 있어요. 그리고 ‘부모 교육’도 중요해요. 아이들이 더 나은 교육과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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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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