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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소식

기로에 선 미국 2017-08-31

 

 

#수면 위로 올라온 ‘혐오’

 

 얼마 전 미국 현지에서 고속도로를 이동하던 중 유독 눈길을 끄는 대형 광고판 하나를 목격했다. “19 Muslim immigrants killed 2977 Americans”(19명의 무슬림 이민자들이 2977명의 미국인들을 죽였다). 한 눈에 들어오는 검정 바탕에 하얀 글씨, 거기다 내용 자체도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어서 수많은 운전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Muslim을 향한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 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믿기 힘든 사적 광고였다.



[사진1] 노스캐롤라이나 주 고속도로변에 서 있는 대형 광고판


 필자가 연수 중인 이 곳 채플힐은 Research Triangle Park(RTP)라 불리는 지역으로 듀크대학교와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 등 세 개 대학을 연결한 삼각지대 안에 다국적 연구 단지를 형성한 곳이다. IBM 등 각종 대기업과 부설 연구소, 대학 등이 모여 있다 보니 이른바 ‘두뇌 집결지’로도 불리며 미국 내에서는 실리콘밸리와 쌍벽을 이룬다고 할 정도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인종 차별이 두드러지게 불거지지 않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 행정명령(Trump’s utive orders on refugee & immigration) 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사정이 다르다. 채플힐이라는 소도시 밖으로 범위를 넓혀 전반적인 노스캐롤라이나 지역과 이보다 더 남쪽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을 묶으면 최근까지 미국 내에서 가장 공공연하게 인종 차별 문제가 지적돼왔던 곳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도 두 지역 모두 도널드 트럼프가 우세를 차지했다. (위에서 언급만 RTP 지역만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일종의 섬처럼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이런 배경 속에 이제는 아예 위와 같은 ‘차별’ 광고판까지 등장한 것이다. 한동안 미국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 행정명령’은 최근 들어 언론에서 잠잠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인들의 의식과 실생활 속에선 이처럼 노골적인 ‘反 다문화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나라답게 미국 내에서는 다양성이 법으로 존중되고 있으며 성별, 인종, 종교 등에 따른 차별은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 아이들 학교에서도 다른 어떤 잘못보다 ‘차별적인 언행’을 엄하게 다룬다. ‘차별’이 연관되는 순간, 이는 학부모까지 소환되는 ‘큰 사건’이 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분위기가 많이 변하고 있다. 학교나 공공기관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견지되고 있지만 숨어있던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점차 ‘커밍아웃’을 하면서 백인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시골 마을이나 유색 인종이 적은 곳에서는 드러내놓고 “White Only”를 외치기도 한다. 한인 사회에서는 “어느 주에 갔더니 동양인이라고 숙소를 내주지 않더라”는 경험담까지 들려온다. 심지어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America is full... go home”(미국은 다 찼다.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적힌 스티커까지 등장했다.

 

 [사진2] 미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스티커

 

#위축되는 이민자들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이 같은 상황에서 이민자들을 고용하는 업체들까지 덩달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자녀들을 데리고 농가 수확 체험을 위해 방문했던  딸기 농장의 업주 Todd Jameson 씨가 그 실례였다. 5대 째 운영해 오고 있는 농장인데, ‘반 이민 행정명령’ 이후 불법 체류자 단속이 심해지고 그와 같은 업장들이 단속의 주 표적으로 대두되면서 합법적인 이민자들까지 취업에 몸을 사리고 그로 인해 농장 운영이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백인들은 좀체 힘든 일을 하려 하지 않는데 그나마 노동력을 제공해왔던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들마저 자취를 감추면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다.

 

 식당들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뉴욕 한 식당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영수증에 “Immigrants make america great. They also cooked your food and served you today.”(이민자들은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듭니다. 그들이 오늘 당신의 음식을 만들고 차려냈습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Mark Simmons 씨는 인종 차별주의를 가진 고객들이 간혹 외국 출신 종업원들에게 무례하게 구는 경우가 있어 이 같은 문구를 영수증에 새겨 넣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민자들이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편협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3] 뉴욕의 한 식당 영수증-이민자에 대한 문구가 적혀 있다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이 같은 열린 캠페인에는 일부 방송사들도 동참하고 있다. 디즈니 채널이 그 예다. 미국 어린이들이 많이 보는 디즈니 채널은 지난 5월부터 “Asian Pacific American”이라는 2-3분짜리 영상을 프로그램 중간 중간 상영하고 있다. 디즈니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다국적 배우들이 한 명씩 나와서 자신의 조상과 핏줄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이다. 필자의 딸아이가 좋아하는 디즈니 영화 ‘Descendant’의 주인공 중 한 명인 Booboo Stewart는 “나는 한국과 일본 등 여러나라 핏줄이 섞인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본인을 당당히 소개한다. 필자의 딸은 이 배우의 출연을 매우 반가워했다. 디즈니의 이 같은 캠페인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아가는 곳이 바로 미국”이라는 명징한 메시지를 이처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디즈니 채널은 다른 방송 채널과는 다르게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골고루 모든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다른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에는 이상하리만큼 유색 인종이 적게 등장한다.)

 

[사진4] 디즈니 채널에서 만든 인기 영화 Descendant 의 주인공 중 한 명인 Booboo Stewart가 자신의 핏줄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

 

 

 뉴욕의 지하철에는 히잡 쓴 여인을 내세운 공익 광고가 등장하기도 했다. “I should have the right” 라고 쓰여 있는 이 광고는 신념에 따라 당당히 히잡을 쓸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뉴욕시는 뉴욕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차별 범죄 접수 건수가 지난해부터 크게 늘고 있어 기획했다고 한다.

 

 

 [사진 5] 뉴욕시가 ‘외국인 혐오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며 시작한 캠페인 중 하나

 

 

#진정한 미국의 모습이란...

 

 취임과 동시에 불법 이민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서는 행정 명령의 차원을 넘어 아예 새 ‘이민법’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8월 3일) 합법 이민자까지 감축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이민 심사를 대폭 강화해 특정 기술이 없거나 영어를 못 하면 사실상 이민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특히 그린카드(영주권) 발급을 줄이는 게 목표라며 현재 연간 100만 명에 달하는 그린카드 발급자 수를 10년 안에 50만까지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의 문을 더 ‘걸어 잠그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지만 일각에서는 ‘다양성’에 좀 더 제한을 둬야 한다는 동조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미국 내 인종 간, 종교 간 갈등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이민자의 나라’로 불리던 미국은 현재 진정한 미국다운 모습이 무엇인가를 놓고 혼돈의 시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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