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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세계]산악 지역에서 문화를 꽃피운 여성 지혜의 원천 2016-12-09

 


 

세계 여성들의 지혜를 찾아 나선 순례 여행!

 

작년부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여성들의 지혜와 기억의 공간을 탐방해온 필자가 뜻밖에 발견한 박물관 가운데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감동을 느낀 곳은 바로 이탈리아 보르고여성박물관이다.

 

이곳은 19세기 중엽 지어진 농민 가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생태적, 친환경적 리모델링 건축 작업을 통해 2008년 새롭게 탄생했다. 산간벽지의 이 작고 소박한 여성의 공간이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 혹은 에르미타쥐박물관 등의 거대하고 전형적인 박물관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는 사실은 탐방 내내 필자에게는 중요한 사색의 주제가 됐다.

 


 

공식 명칭은 ‘안드리올로의 집’

 

가족을 돌보느라 세상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미혼으로 평생 자신의 집에 머무르며 좌절의 눈물을 흘린 알리체 안드리올로.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 안에서 비록 최소한의 재료라고 하더라도 최대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한, 이름 없는 대다수 여성예술가들과 여성장인들의 고귀한 감정과 경험을 보여준다.

 

보르고여성박물관은 이탈리아 북부 변두리 산간지역의 평범한 여성들의 일상적 삶의 공간이 여성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하는 박물관으로 변모한 경우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역사의 수면 밑에 깊게 감춰져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아다니고 여성관련 컬렉션을 수집하며 부단히 여성유물들에 말을 건네고 현재로 불러내는 작업을 해온 예술가이자 큐레이터 로잔나 카발리니의 열정이 숨어 있다.

 

보르고여성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안드리올로의 집. 그러나 이 농민 가옥은 로잔나 카발리니의 손길 속에서 ‘산악여성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박물관은 이탈리아 북부의 산간지역 트렌토현의 보르고 발수가나 중심지인 올레에 위치하며, 페르시나와 테시노 계곡의 깊은 산자락에 있다. 박물관은 이러한 자연의 풍광과 함께 근처에 있는 셀라 계곡의 거대한 삼림지역에서 1986년부터 열린 국제적인 야외현대미술전시회인 아르테 셀라가 유명세를 타면서 최근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곳에 가옥을 짓고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안드리올로가 사람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한 알리체 안드리올로는 75세에 생을 마감하면서 지역공동체에 집을 내놓았고, 이곳은 로잔나 카발리니 등 관련자들과 시 정부 사이의 세부 조정을 거쳐 박물관 부지로 최종 결정됐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 라오나 프로네르, 아르테 셀라 전시회 개최에서 주역을 담당하기도 했던 문화위원 엠마누엘르 몽티벨레르, 시인 부루나 마리아 달 라고, 건축가 니콜라 키아바렐리 등 지역인사들이 다각적으로 지원하고 참여했다. 현재 박물관장은 마르티나 디세냐가 맡고 있다.

 

보르고 발수가나 지역은 하얀 회벽에 붉은 색 지붕을 한 이탈리아 도시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달리 알프스 산간의 혹독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어두운 황색에 나무를 덧댄 가옥 구조가 많다. 메라노여성박물관을 지나 이곳으로 왔을 때는 7월 중순으로 키 작은 사과나무와 옥수수가 지천에 있었지만, 산자락이라 아직 제대로 여물지를 않았다. 보르고여성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전쟁박물관을 지나쳐 왔는데, 특히 작년에 이곳에서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듯 관련 서적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알리체 안드리올로가 남긴 것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이탈리아왕국은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3국동맹에 속했다가 중립을 선언한 후 다시 3국협상에 들어가면서 특히 국경 근처 지역을 포함해 이탈리아 북부지역은 전쟁의 피해가 컸다. 수많은 지역이 소개되고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야 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1915년 5월경 안드리올로 가문의 사람들을 포함해 트렌티노 계곡에 있는 많은 지역의 주민들이 퇴거당했다.

 

국경 근처 주민 7만여명은 북쪽으로, 3만여명은 남쪽으로 강제로 쫓겨났다. 3년 반 동안 계속된 강제 퇴거가 끝난 후 운좋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있지만 이곳의 산간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재산도, 토지도 상실하고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전후에 안드리올로가의 집은 수리됐고, 1920년대 이후 내내 그 가족이 살았다.

 

안드리올로 가족은 전쟁통에 이별을 경험했고, 전후에 나이든 남자형제들이 외지로 떠나는 상황에서 알리체는 아픈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집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다가 혼기를 놓쳤다. 알리체는 산간지역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했을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인내심이 많으며 신앙이 강한 여성들이 충분히 직면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알리체를 통해 우리는 가족관계 안에서 고통스럽게 제거되거나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비밀을 가진 여성들의 기억과 이야기들을 재현할 수 있게 된다.

 

건축의 측면에서 보면, 적어도 1860년대 이전에 건축된 안드리올로의 옛 가옥은 알프스 산간도시 지역의 전형적 농가로 약간 반지하의 석회암으로 지어진 계단이 있는 3층 건물이다. 카밀로 안드리올로가 이 집을 구입한 후 헛간을 지어 건물을 합치면서 규모가 좀 커져 총400㎡의 공간이다. 안드리올로의 가옥은 건축가 니콜라 키아바렐리의 프로젝트에 의해 리노베이션됐고, 보체르 루치아노 디 보르고 건축회사가 시공을 맡았다.

 

건물 복구 작업에서 생태적, 친환경적인 건축자재 사용이 우선적으로 고려돼 점토와 대마로 단열을 하고, 보온과 가시성을 보장하기 위해 낙엽송 목재로 벽을 덧대어 마감했다. 산악지역의 낮은 온도를 고려해 반사유리창과 태양광 발전시스템을 부착한 지붕은 100w의 전구 10개의 사용과 효율적인 단열 및 난방을 보장해준다.

 

전시구조와 내용 또한 특별하다. 박물관은 밖에서 보면 3층 건물이지만, 한쪽 지면이 움푹 들어가 지상 1층은 약간 지하층의 느낌을 받게 되는 구조다.

 

모두 6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1층은 출생으로부터 아동기, 소녀시기, 성년기, 결혼, 죽음 등 여성의 일생과 연관된 유물이 전시돼 있다. 2층은 알리체 안드리올로가 평생 사용한 방과 부엌이 그대로 전시돼 있으며 3층은 종교와 전통에 나타난 여성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와 아울러 레이스 뜨기, 코바늘 뜨기, 자수, 바느질, 편지, 의복 장식품 등 장인이자 예술가로서 산간지방 여성들의 재능을 보여주는 전시로 구성돼 있다.

 

 

 

 

유물에 담긴 여성의 창의성

 

로잔나 카발리니는 “이 프로젝트를 이끈 사람들의 생각은 평생 가족과의 관계 안에서 집의 벽 안쪽에 살았던 알리체 안드리올로의 기억에 맞춰져 있다”면서 “그것은 우리가 일종의 도덕적 부채를 지고 있는 대다수 익명의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주고자 하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르고여성박물관을 돌아다녀보면, 아래층에서 위층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마치 여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알리체의 방을 제외한 다른 공간에는 대부분 가정 안에 머물렀던 여성들의 기록과 유물들이 보존돼 있다. 조용히 겸손하게 자신의 삶을 감내한 알리체와 같은 대부분의 평범한 여성들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이는데 목적을 둔 전시콘텐츠는 여성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일상적 경험의 내밀한 측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작자미상의 놀라운 창의성을 지닌 여성들의 세계가 반영돼 있다.

 

전시콘텐츠의 핵심은 태어나 소녀가 되고 결혼해서 출산하며 죽음에 이르는 여성 삶의 전 과정을 재현하는데 있는데, 1층에서 3층까지 다양한 유물과 함께 전시돼 여성의 삶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이 신장되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아이를 출산하는 재생산의 존재이며, 고통 치유와 산파술을 지니고 재생산을 돕는 여성들의 모습, 미신 혹은 유사종교로 보이는 민속전통의 관행을 따르는 여성들의 모습, 가사노동과 의생활에서 여성들의 검소함과 재활용의 감각 그리고 여성들의 노련한 바느질과 자수의 기술 등은 근대적 노동으로 동원되는 산업화 과정의 다른 한편에서 여성들의 손기술이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르고여성박물관에서 필자가 특히 전율을 느낀 것은 얻을 수 있는 재료가 제한돼 있었던 상황에서 여성들이 무궁무진하게 창의력을 발휘해 유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었다. 주로 19∼20세기 산간마을 여성들의 유물 컬렉션으로 구성된 보르고여성박물관 곳곳에서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꼬아 목걸이와 귀고리를 만들고 액자를 장식하며, 종이와 천조각을 오려 마리아와 예수의 이콘을 만들고, 비싼 대리석은 가까이 할 수 없으므로 양초를 주물러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신의 형상을 만드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도발성도 보여준다.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으나 사실은 삶의 구석구석에서 기지를 발휘한 여성들을 만나는 순간은 정말이지 여간 기쁜 게 아니다. 가족을 보살피느라 자신의 집을 떠나지는 못했던, 그러나 의식세계가 남달랐던 과거의 수많은 알리체들은 다른 한편에서 보면 오늘날 수많은 여성들이 집을 떠날 수 있는 힘의 근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출처: 여성신문-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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