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좌측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페이지 하단 바로가기

SHARE

[나눔]한솥밥 먹으며 외로움 덜어… 9988 문제없어요 2015-11-23

 

 


 

 

“집에 나 혼자 있을 땐 이삼 일 묵힌 밥에 물 말아서 먹었어요. 딸이 전화통화에서 ‘엄마, 또 싱크대에 서서 먹지?’라고 걱정하곤 했어요. 요즘은 쉼터에서 같이 밥 짓고 같이 잠자고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라요.”

 

14일 오후 전남 순천시 황전면 하평마을에 있는 ‘하평마을 9988 쉼터’에서 만난 독거 여성 노인들은 “서로 말상대 하느라 외로울 틈도 없다”며 웃음꽃을 피웠다. 40∼50년씩 한 동네에서 살아 수저 개수까지 알 만큼 집집의 사정에 훤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다.

 

“10대처럼 수다 떠니 외로울 틈 없어”

 

8년 전 남편과 사별한 허남엽(82)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들과 살려고 고향을 떠난 적이 있다. 그런데 집 안에만 갇혀 있으려니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결국 못 견디고 다시 시골로 내려왔다. 하평마을 최고령자인 허씨는 “마을에 내 집이 있지만 밤낮 쉼터에서 산다. 보통 밤 10시쯤 자는데 새벽 5시면 일어나서 다 같이 다리운동, 팔운동을 한다”며 웃었다. 쉼터 살림을 맡은 배영자(69) 대표는 “밤에 노인들이 화장실 다니기 좋게 켜놓고 잔다”며 미니 형광램프를 보여줬다. 마을 부녀회장인 그는 ‘잔소리꾼’으로 통한다. 노인들에게 “운동을 안 한다” “밤에 옆으로만 누워 자면 다리 눌린다”고 한마디씩 하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동네에서 고독사한 한 노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동네에 혼자 사시던 어르신이 있었는데 집에 가보면 ‘나 죽었는지 확인하러 왔느냐’고 말하곤 하셨다. 그런데 경로당에 며칠째 나오지 않아 ‘병원 가셨나 보다’ 했다. 그런데 딸이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걱정하더라. 댁에 찾아가 보니 화장실 문이 잠겨 있었다. 돌아가신 지 5일이나 지나 화장실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유순상 이장은 “이웃마을에서 홀로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며칠 지나 발견된 적이 있었다. 아무도 임종을 못 지켰다”며 “농촌에선 이런 일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9988 쉼터가 독거노인 고독사 예방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평마을 9988 쉼터가 생긴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이곳은 만65세 이상 독거노인만 이용할 수 있다. 지금은 6명이 살고 있다. 모두 여성이다. 쉼터를 만들려고 새 집을 지은 것은 아니고 기존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을 개·보수해 쉼터로 지정했다. 순천시는 도배·장판 교체, 싱크대 정비, 화장실·샤워장 설치 등 시설 개·보수 비용으로 500만원을 지원했다. 매달 부식비로 1인당 4만원씩 주고,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쉼터당 난방비 20만원을 지원한다.

 

 

 


 

 

이웃마을인 산영마을에도 9988 쉼터가 있다. 지리산 천왕봉 자락에 둘러싸여 단풍이 그림을 그린 듯 아름다운 이 마을 쉼터에는 독거 여성 노인 5명이 거주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쉼터로 지정된 후 도배도 하고 바깥에 있던 화장실을 실내로 옮겼다. 현대식 화장실과 샤워장을 설치하고 지붕도 개·보수했다.

 

조순심(76) 대표는 지난해 쉼터에서 살다 몸이 아파서 돌아가신 박군순(당시 85세)씨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 대표는 “혼자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고 쉼터에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생을 마감했다는 게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딸 둘, 아들 셋이 전국에 흩어져 산다는 정성균(82)씨는 “아이들이 먹고 살기 바빠서 명절 때나 한 번씩 고향에 온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보다 쉼터 친구들이 훨씬 좋다”고 했다. 늘 같이 지내면 싸울 일이 생기지 않느냐는 물음에 정씨는 “그런 일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한솥밥을 해먹고 사는데 싸워서야 쓰겠어요? 가족이나 다를 바 없지…. 얼마 전 대상포진에 걸려 날마다 버스 타고 병원에 갔어요. 지금도 다리가 아픈데, 쉼터 친구들이 가장 많이 걱정해줬어요. 어떤 땐 자식보다 내 걱정을 더 많이 해요.”

 

9988 쉼터를 개소한 후 실제 독거노인 복지 향상에 적잖은 성과를 냈다. 쉼터에서 지내던 한 독거노인에게 구안와사가 왔는데 119를 급하게 불러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어서 호전되기도 했다. 특히 건강 상태가 안 좋은 독거노인에게 쉼터가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하평마을에 사는 송재순(82)씨도 “다리 두 번, 허리 두 번 등 수술만 여섯 차례 했다. 혼자 있으면 걱정이 많이 된다. 쉼터가 생겨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창조복지 벤치마킹 모델로 떠올라

 

순천은 만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1월 현재 3만6627명에 달하고 고령화율이 13.1%에 이른다. 조충훈 순천시장은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지만 핵가족화와 가족 부양 기능이 약해지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며 “위기 대처 능력이 부족한 독거노인의 고독사, 치매, 우울증 등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농촌 지역 빈 집을 활용해 독거노인 문제를 지역이 함께 해결하자는 의미에서 사회적 안전망 구축 차원에서 쉼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99세까지 건강하고 팔팔(88)하게 사는 공동 거주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9988 쉼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쉼터마다 독거노인 5∼10명이 거주하고 있다.

 

농촌이 고령화되면서 이제 60대 노인은 젊은 축에 속한다. 대다수가 70대 노인이다. 부부만 남아 있어도 자녀들이 도회지로 빠져나가 외롭고 적적하긴 마찬가지다. 마을 애경사를 나누던 경로당이 독거노인들에게 제2의 집이 됐다. 홍용복 순천시 노인장애인과장은 “순천시에 경로당이 650곳인데 독거노인이 많이 사는 마을을 중심으로 희망 지역을 추천받아 쉼터로 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3월 시작해 올해까지 50곳을 지정해 358명이 살고 있다. 이 중 354명이 여성이다. 순천시는 2018년까지 100곳에 쉼터를 꾸릴 계획이다.

 

순천시는 창조복지 모델인 9988 쉼터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등 현장 중심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내실 있게 추진해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지난달 제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전국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 시장·군수·구청장을 청와대로 초청한 국정설명회에서 ‘9988쉼터’를 창조복지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기도 했다. 홍용복 과장은 “올해 예산이 3억1500만원 들었다. 큰 예산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여성 노인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을 하겠다며 견학하러 온다”고 전했다.

 

 

[출처: 여성신문-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세히보기
이전글 [돌봄]타인을 돌보는 일, 존중받아야 하는 일
다음글 [공모]여성 혹은 남성이어서 불편했던 제도 있으세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