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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THE SJF VIDEO] 가나 주한여성대사 Elizabeth NICOL 2016-12-05

 

 

 
 

 

 

"가나의 31st December Women’s Movemen"

 

   SJF : 대사님의 이력을 보다가 31st December Women’s Movement라는 것이 눈에 띄었어요. 무척 흥미로운데 이게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GA : 31st December Women’s Movement은 가나에 있는 비정부 조직이에요. 가나의 전 영부인에 의해 시작되었지요.

 

   SJF : 몇 년도였죠?

   GA : 1982년이요.
네, 당시 대통령은 제리 롤링스씨였어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얻었고 정권을 뺏기기 전까지 두 번이나 선거에서 이겼죠. 그가 군사 지도자로서 있을 적에 그의 아내가 아동과 여성의 복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성의 위치가 그다지 좋지 않아요. 물론 선진국에서도 그럴 수 있고요. 여성의 복지를 발전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요. 그래서 당시 영부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 여성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성들은 자신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자녀들과 남편, 아들, 형제 등 남성들에게도 신경을 쓰지요. 그래서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것은 결국 전체적인 사회를 발전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그녀는 가나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31st December Women’s Movement가 시작되었어요
31st December Women’s Movement라고 불려진 이유는 제리 롤링스씨가 정권을 잡은 것과 관련이 있어요. 제리 롤링스씨는 1982년 12월 31일에 정권을 얻었고 여성들은 비로소 자신들을 위해 싸울 수 있었지요.

 

   SJF : 정말 비전 있는 사회운동이네요. 1980년 초면 무척 이른데 그 이후로 가나 여성의 상황은 어떻게 변했고 발전했나요?

   GA : 물론 운동 초반에는 정부 측에서 여성의 지위나 상황을 발전시키는 것을 망설였어요. 하지만 이런 부분은 문화와 변화에 뿌리가 있는 문제에요. 여성이 겪는 문제들이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때는 굉장히 조심해야 하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해요. 그 사람들이 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그래서 저희는 다소 공격적으로 활동했어요. 특히 여성 지도자, 남성, 권위자들에게 여성 인권에 대해 알렸죠. 사람들은 간혹 자신이 처한 상황이 원래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어요. 여성들이 예전에 ‘난 여자니까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생각했다면 인식이 개선된 후에는 ‘아니야, 이건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내려 받아온 옳지 않은 전통이야. 지금은 새로운 시작, 새로운 생각을 통해 이걸 바로잡을 때야.’라고 생각하죠. 이것이 31st December Women’s Movement의 위대한 업적이에요.

 

   SJF : 정말 어려운 과정이었겠네요.

   GA : 네, 초반에는 그랬죠. 하지만 사람들도 결국 생각도 해보고 이해하기도 했어요. 사회 주요인물들도 말이지요. 어떤 사람은 제게 와서 지금까지 남성이 여성을 대했던 방법을 생각해보면 자신이 남성인 것이 너무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가나의 여성들"

 

   SJF : 외교부에는 여성 장관이 있지 않나요?

   GA : 네, 그리고 가나 정부의 20%는 여성이지요.

 

   SJF : 네,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GA : 네, 가나에는 여성 수석재판관, 여성 통계청장, 여성 변호사들이 있어요. 최근까지는 국회에 여성 연설자가 있었지요. 이렇게 조금씩 발을 내딛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여성 비율이 40%가 될 때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SJF : 와, 40%면 50%보다는 작지만 대단하네요. 전통적인 농촌사회와 중앙정부는 아무래도 걸어가는 속도가 다른데 가나에서는 이런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가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GA : 네, 문화 때문은 아니에요. 교육 부족 때문이죠. 가나 여성 대부분은 양성평등 제도에도 불구하고 초등교육을 마치지 못했어요. 더 이전 세대를 보면 그 수많은 사람이 교육받지 못하여 힘을 얻지 못했죠. 교육과 역량강화 없이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전통적인 방식, 신념, 문화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며 그 영향을 받을 거예요. 31st December Women’s Movement가 하고자 하는 일은 바로 이것과 연결돼요. 저희는 가나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하고 있고 많은 일을 해냈어요.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은 많죠. 어떤 지역, 사회, 국가이든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계몽이 더 빨리 일어나죠. 하지만 우리는 점점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SJF : 이것은 학자의 입장에서 여쭈어 보는 것인데 혹시 이런 사회운동에 대한 반발은 없었나요? ‘이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야’라는 남성들의 저항 같은 거요.

   GA : 음, 어떨 때는 여성들이 그래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여성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에게는 딸이 두 명 있는데 그 중 한 명에게 친척들이 계속 “너는 여자야”라고 말을 해요. 제 딸아이는 부엌일을 그다지 즐겨 하지 않는데 제 여동생들이 “너는 여자니까 부엌일을 해야만 해”라고 말해요. 그러면 제 딸아이는 “왜 제가 여자라서 부엌일을 해야 하죠? 부엌일 말고도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라고 지지 않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가 물려받은 문화이고 믿음이기에 쉽게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죠. 물론 어떤 것들은 남성들에 의해 악화되기도 해요. 우월한 위치를 쭉 유지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런 부분에서는 차이가 좀 있지만 제 생각에는 가나 남성들이 남녀평등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더 자유민주적인 면이 있기도 하고 남녀평등에 대한 문제가 타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심각하지는 않거든요. 어쨌든 아직 갈 길이 먼 것은 맞아요.

 

   SJF : 어쩌면 그게 가나가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겠네요. 서아프리카 국가에서 가장 빨리 발전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잖아요.

   GA : Gold Coast 출신인 가나의 애그리 박사님을 아시나요? 1875년에 태어나 1927년에 돌아가셨는데 아프리카 정치와 계몽의 선구자이시지요. 박사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발전을 막는 최고의 방법은 남성을 교육하고 여성을 방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남성 한 명을 교육한다면 그 개인 한 명만 교육하는 셈이다. 그러나 여성 한 명을 교육한다면 그 모든 가족을 교육하는 것이다.” 박사님은 성 인지도가 높으신 분이었고 이러한 내용은 가나 국민에게도 알려져 있어요. 대중적인 장소에서 여성에 대해 말할 때 가나 남성들이 불안해 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SJF : 와,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GA : 네, 가나의 배경을 보여주죠.

 

   SJF : 가나의 미래가 어떻게 그렇게 밝은지 보여주는 예시네요.

 

 

"차별없는, 편견없는 교육"

 

 

   SJF : 이제 대사님에 대해 알려 주세요. 따님이 두 분 있다는 것을 잠시 말씀하셨죠. 저는 세 명이 있어요. 대사님께서는 당연히 따님들에게도 본보기가 되어주실 텐데 어떻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정부 일을 하는 지금의 대사님이 되셨나요?

   GA : 네, 제 아버지는 교육 받은 공무원이셨고 어머니도 초등교육을 받으셨어요. 당시에는 그것 또한 교육을 받은 측에 속했지요. 그리고 저는 9남매 중 장녀였어요. 아버지께서는 우리 3남6녀가 모두 차별 없이 교육받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셨지요. 제 외할아버지도 초등교육까지 마치신, 그 당시에는 ‘계몽’에 속하는 분이셨어요.

 

   SJF : 네, 그 때는 더 했겠죠.

   GA : 네. 부모님께서는 당신들께서 받으신 교육을 통해 자녀들을 교육하실 마음을 가지게 되셨어요. 부모님은 물론 강제적으로 교육을 받으셔야만 했지만요.

 

   SJF : 맞아요, 학교에 가려면 학교에 가고 싶어해야 하죠.
딸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GA : 첫째 딸은 첫 번째 학사를 미국에서 받고 두 번째 학사는 영국에서 엔지니어링으로 받았어요. 저는 딸아이들에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제게 다가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학업을 마친 이후에 자영업을 할 수도, 공무원이 될 수도, 민간 부문에서 일할 수도 있죠. 그건 아이들 선택이에요.

 

   SJF : 네, 따님들께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많으니까요.

   GA : 우리, 아니 제가 가졌던 기회와 가능성보다는 많지요. 그래서 저는 딸아이들이 저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믿어요. 제 둘째는 어릴 때부터 예술을 하고 싶다고 제게 말하고는 했어요.

 

   SJF : 와, 어린 친구가 멋진 꿈이 있네요.

 

 

"전세계의 대통령이 된다면?"

 

 

   SJF : 이 질문은 제가 모든 대사님들께 여쭈어 보는 것인데요. 대사님들께서는 한국에서 각자의 국가를 대표하고 계시니 세계의 문제점을 많이 보고 느끼실 거라고 생각해요. 변화를 가져올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시기도 하고요. 만약 대사님께서 하루 동안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제가 만약 대사님의 지니이고 “대사님은 세계의 대통령이시니 단 한 가지를 바꿀 기회를 드리겠어요”라고 한다면 무엇을 바꾸시겠어요?

   GA : 개발도상국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살아가는 것이요. 모든 아이들이 아이다운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세상에 너무 많은 어린이들이 아이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있어요. 집안일의 영향이 크죠. 아프리카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이들이 반 나절 동안 물을 찾아 다니기도 해요. 만약 이들이 물 접근성이 좋은 곳에 살거나 집안 및 마을에 물 공급이 잘 된다면 아이들은 집안일에서 벗어나 학교에 갈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전세계에 이런 모습이 나타나면 좋겠고, 우리는 결국 하나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해요. 한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지요. 그렇기에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이 중요해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 나라를 옮겨 다닐 테니까요.

 

   SJF :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GA : 행복하지 않죠.

 

   SJF : 대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요. 오늘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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