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좌측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페이지 하단 바로가기

PEOPLE

[SJF&PEOPLE] 박근혜 비즈니스코치 “Outside-In!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라 2016-09-09
성주재단이 만난 사람_8

“Outside-In!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라!”

 

비즈니스코치 박근혜 트레이너

인터뷰 메인 이미지

8월 가을이 올 듯 말 듯 여전히 햇빛이 내리쬐는 날, 토종 한국인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싸워낸 비즈니스코치 박근혜 트레이너를 만났다.
중고등학교 선생님, 리더십 강사, 비즈니스 코치,
그리고 독일인 남편의 아내이자 네 아이의 엄마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도전을 망설이는 많은 이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해 주는 듯 했다.

01. 중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커리어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만 두고 새로운 직업을 찾은 이유가 있나요?

힘들다는 임용고시에 붙어서 안정직인 교사생활을 왜 그만두냐며 모두가 말렸는데, 그 당시 아이가 셋이 되기도 했고 교사 생활이 더 이상 내게 영감을 주지 못해서 고민 끝에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하지만 교사 생활은 나에게 자양분이 되었다. 아이들과 같이 토론하고 서로 공동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서 여러 활동을 가미한 실질적인 수업을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성적도 중요했기에 평소엔 소위 “튀는 수업”, 시험 전에는 학원 강사처럼 “쪽집게, 요점만 정리”하는 방식으로 내 신념을 펼쳐나갔다. 윤리, 도덕 과목을 가르쳤는데 내 수업의 한 예를 들자면, 한번은 “진로 탐색”이라는 주제의 단원이 있었는데 난 그냥 교과서를 읽으면서 직업의 종류를 알아보는 대신에 학생들에게 직접 자신의 희망 직업을 가진 이들을 인터뷰해오는 숙제를 시켰다. 경찰이 꿈이면 경찰을 인터뷰해오고, PD가 꿈이면 PD를 인터뷰해오고, 인터뷰가 여의치 않을 경우 만약 드라마 작가가 꿈이라면 간단하나마 드라마 대본까지 써보도록 했다.

그때의 기억이 많이 남는지 아직도 제자들에게 연락이 온다. 그 중 친한 제자 중 한 명이 내가 한국에서 기업 교육 컨설턴트로 일하던 당시 어시스턴트로 일해줬고 지금은 그녀의 남편이 현재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도와주고 있다. 교사직을 그만 둔 지 거의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여러 명의 제자들과 인연을 이어 가고 있어 행복하다.

02. 그 이후, 리더십 강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교사를 그만두고 외국인 주재원들이 처음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 것을 돕는 퍼실리테이터(Facillitator)를 하던 중 기업교육을 하는 회사의 사장이 날 스카웃했다. 그 회사는 싱가폴에 있는 리더십 회사여서 영어로 강의를 해야 했는데, 평소 영어에 관심은 많았지만 유학 경험도 없고 당시 영어 실력도 강의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선뜻 받아드리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주 간단하게 ‘연습하면 되잖아!’라고 하더라. 그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싱가폴로 가서 배워보기로 결정했고, 수개월간 “죽을 것 같은” 하드트레이닝을 받고 몇 번의 실전 경험 끝에 영어로 비즈니스 강의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우리나라에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세일즈 스킬, 매니지먼트 등을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교포인 경우 꽤 있는데 그들은 한국의 문화나 기업의 정서를 잘 모르기 때문에 토종 한국인인 나는 그런 면에서 포지셔닝이 좋았다. 한국에 있는 외국계회사에서 많은 교육 요청이 들어와 리딩엣지(Leading Edge)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기업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트레이닝, 커뮤니케이션 스킬 등 리더십 강의를 영어와 한국말로 함께 진행했다.

인터뷰 메인 이미지



03. 선생님의 리더십 강의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리더십 강의와 차별된 점은 무엇인가요?

보통은 하나의 콘텐츠로 여러 기업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하지만 나는 강의가 시작될 때까지 세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고객맞춤(Customization)이다. 회사마다 문화도 다르고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 건지 등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그 회사의 니즈를 먼저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그 다음에 프로그램 콘텐츠를 짠다. 이 과정에서 진단이 들어간다. 그 사람의 상사, 부하직원, 동료, 심지어 자주 가는 커피숍 점원까지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를 한다. ‘이 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광범위한 질문이 아니라 ‘갑자기 내일까지 마감인 일을 잊어버리고 안 한 직원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시나요?’ 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으로 답변을 유도한다.

사전 조사가 완료되면 트레이닝과 코칭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툴이 있는데 비디오 녹화를 이용한 role play (상황극)이 대표적이다. 요즘 힘도 없고 의욕도 없는 직원에게 동기부여 시키는 상황을 설정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왜 그래! 잘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대화파괴자(Conversation Killer)이다. 부하직원은 당연히 ‘네. 알겠습니다.’ 라고 하겠지만 상사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말할 수 있는 직원이 얼마나 있을까? 마음을 열게 하고 이 직원이 직면한 문제가 능력문제인지, 환경문제인지, 사람문제인지 대화를 통해 알아내 갈 수 있는 코칭의 마음가짐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툴 중 하나가 바로 이 Video taping role play이다. 비디오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제 3자의 눈으로 보게 되면 평소의 자신의 태도와 대화 방식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어 피드백을 주고 받기가 쉬워진다.

04. 아이가 넷이라고 들었습니다. 육아는 어떻게 하셨나요?

아이들은 거의 내가 직접 키웠다. 그 중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 네 명 모두 2년씩 모유수유를 한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강의 할 때 늘 유축기를 들고 다니며 강의 시간 중 휴식 시간마다 유축기로 젖을 짜곤 했다. 그래서 하루 8시간의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노트북, 강의자료 외에도 하루 종일 유축한 3-4팩의 모유통과 무거운 유축기가 내 손에 들려져 있었다. 물론 내가 일할 때 아이들 봐 주시는 아주머니가 유축한 모유를 대신 먹이기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힘들긴 했지만 모유 덕분에 아이들의 면역력이 좋아 모두 건강하고 잔병 없이 자란 것 같아 자랑스럽고 참 뿌듯하다. 오히려 모유수유 덕분에 비단 여성 리더십강의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들의 강의에서도 좋은 반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에서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해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05. 아이 넷을 직접 키우며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가능했나요?

남편의 격려와 조력이 많은 힘이 되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독일인인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그 당시 IMF의 위기를 예견했던 외국인 경제 전문가중의 한 사람으로 영국에서 재학 시절 한 한국인 교수를 통해 한국을 처음으로 알게 되고 곧 매료되어 일부러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일하게 된 사람이다, 물론 나를 만난 이후 한국에 14년이나 살게 되었다.

그는 육아에서 단순히 “엄마”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빠인 자기의 일” 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 성격을 잘 알기에 내가 집에 있으면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농담처럼 얘기하면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늘 좋은 조력자, 코치가 되어 주었다. 지금도 내가 한국에 출장 와 있으니 애들 넷을 다 데리고 알프스 산장에 1주일 휴가 가 있다. 힘들다고 빨리 오라고 하더라(웃음). 남편이 그나마 외국계 회사에 다녀 틈틈이 자택근무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했고 양가 부모님이 많이 도와 주셔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모두 서울에 있는 “서울 독일 학교”로 보내게 되었는데 한국 아이들과 비교해서 학원비나 과외비는 들지 않았지만 외국인 학교라 학비가 큰 부담이 되기도 했고 장기적으로는 독일로 대학을 보내야 할 것 같아 깊이 고민하던 차에 남편이 오스트리아의 한 회사로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가 되어 3년 전 모두 독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06.한국에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독일로 넘어가셨습니다. 독일 생활에 만족하시나요?

당시 한국에서 기반을 잘 잡았고 여러 좋은 프로젝트를 제의 받고 있었던 차라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 전까지 정말 외국에서 살아 본 경험도 없어서 두렵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 가족이 가장 중요하고 이게 내 인생에 또 다른 도전이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떠났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엔 직업도 없고, 애 넷을 데리고 집안일도 다 해야 하고, 남편과도 주말부부가 되다 보니 정체성의 혼란이 와서 우울증이 왔었다. 잘 나가던 커리어 우먼에서 갑자기 가정부가 된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를 극복하고자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8시간씩 집중해서 공부하니 독일 대학을 갈 수 있는 수준의 자격증을 5개월만에 취득했다. 독일인과 커뮤니케이션에 전혀 문제가 없는 실력도 되고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시어머니께서 어떻게 독일인인 네 남편보다 독일 친구가 많을 수 있냐며 신기해하신다.

독일에서는 지금 인터네셔널 스쿨에서 한국 아이들에게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 한국문화 등을 파트타임으로 가르치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와 반대로 독일 기업을 대상으로 아시아에서 성공하는 방법, 아시안들과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 수 있는 스킬 등에 대한 기업 강의도 하고, 현재는 한국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돕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바깥에 나와보니 오히려 우리나라와 나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은 새로운 관점에서 시야를 넓혀 준 독일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감사한다.

07. 청년들의 해외 취업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 부탁 드릴게요.

현재 한국 정부 및 여러 대학들과 함께 한국의 IT 전공 학생들의 유럽 인턴십과 궁극적으로는 해외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유럽에서 한국의 인지도, 특히 IT분야에서의 인지도는 아주 높다. 그래서 이미 한국 인턴십을 원하는 기업들을 여럿 확보했다. 그런데 정작 여기에 보낼 한국 학생들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IT분야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글로벌한 마음가짐과 태도, 언어능력을 갖춘 인재를 찾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도 많은 인재들이 해외보다는 국내 유명 대기업 취업을 선호한다는 것 또한 이번 프로젝트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많은 인재들이 한국에서만 갇혀 있을 게 아니라 더 넓은 세계를 보고 경험했으면, 유럽에서의 높은 삶의 질을 경험하고 만끽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터뷰 메인 이미지




08. 선생님 자신의 리더십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가요?

나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다.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뭐든 금방금방 시작하고 추진한다. 사실 교사직을 그만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아이를 셋 낳았을 때 또 다른 일을 시도한다는 것도, 아이 넷을 데리고 외국으로 나가 직업을 구하는 것도 모두 도전이었다.

또한 나는 자기관리, 시간활용을 잘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미팅 및 강의를 나간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간식을 준비하여 함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숙제가 있으면 도와준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놔두고 운동하러 나간다. 보통 1시간 반에서 2시간, 일주일에 3~4번 정도 한다. 운동하지 않는 날은 보통 친구들을 만나 소셜라이프를 즐긴다. (사실 나는 남편과 달리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유형의 사람이다.) 주말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가지면서 꼭 1주일에 한번은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가진다. 남편은 나의 절친, 코치이자 스승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좋은 사람이 있으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인데, 그 에너지가 바로 내 리더십의 근원인 것 같다.

09. 마지막으로 글로벌로 진출하고자 하는 차세대 여성들에게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먼저 다가가거나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가 독일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기 때문이다. 독일사람들이 냉소적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먼저 다가가보니 그렇지도 않더라. 내가 폐쇄적이면 다른 사람도 내게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오픈된 마음으로 자신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확실히 한국에 갇혀있기보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나도 독일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토종 한국인이었다. 한국에서 외국계 회사와 많이 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시야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이었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니 딱 그 부분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 외국에 나오니 아웃사이드 인(Outside In)이 되었다. 글로벌한 시야가 생기기 시작했고 바깥 세상에서 보는 한국은 달랐다.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다면 두려움을 가지지 말고 일단 시작했으면 좋겠다. 안되면 또 하면 된다. 어차피 미래는 예측대로 되지 않는 법! 어느 연령대이든, 어느 삶의 환경이든 상관없이 걱정하고 망설이기 보다는 일단은 부딪히고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난 믿는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고 앞으로도 이렇게 달려가고 싶다



[ⓒ 성주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글 [THE SJF VIDEO] 벨라루스 주한여성대사 Natallia ZHYLEVICH
다음글 [SJF&PEOPLE]채널뉴스아시아 Chloe Cho ‘Carpe diem! 현재를 놓치지 마세...

목록